제목
«나의 투쟁»나의 투쟁(독일어: Mein Kampf / 영어: My Struggle)는 아돌프 히틀러가 자신의 사상 겸 그 때까지의 인생을 담은 자서전이다. 정확하게는 히틀러가 구술하고, 그의 수하였던 루돌프 헤스가 받아쓴 책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저작권을 소유한 바이에른 주정부에서 출판을 허가하지 않아 일반적인 판본으로는 한동안 출판되지 않다가, 지금은 내용에 대해 광대한 반박을 주석으로 달아 다시 발간되고 있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 폭동 실패 뒤 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꽤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맥주홀 폭동의 실패와 자신의 수감으로 당의 해체와 지지자들의 와해를 막고 낙심한 당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집대성한 서적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히틀러가 직접 안 쓰고 수하인 루돌프 헤스를 시켜 받아쓰게 했다.[1] 헤스 뿐만 아니라 한프슈탱글 등 나치당 내 식자층도 교정에 관여했다. 형이 출판업자였던 한프슈탱글은 형에게 나의 투쟁 출판을 의뢰하러 갔다가 단칼에 거절을 겪었다고 한다. 초판 제목은 '거짓과 어리석음, 비겁함에 맞선 4년 반 동안의 투쟁(Viereinhalb Jahre des Kampfes gegen Lüge, Dummheit und Feigheit)'이었지만, 당시 프란츠 에어 출판사(Franz Eher Verlag)[2] 대표인 막스 아망(Max Amann)[3]이 '이렇게 제목이 길면 아무도 안 읽겠습니다.'라면서 딱 두 단어로 줄여 다시 낸 것이 바로 '나의 투쟁(Mein Kampf)'.
히틀러가 수감되었던 시절에는 판매량이 신통치 않았으나,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판매율이 급상승했다. 그 가운데 실제로 나치즘에 경도되어서 읽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사회 분위기에 억지로 떠밀려 읽은 사람도 상당수였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신혼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릴 때 의무적으로 1권씩 선물했으며, 이 책의 인세만으로도 히틀러는 막대한 수입을 얻었는데 인세 수입의 세금은 한 푼도 안 냈다고 한다.[4]
집권 중반기에는 나의 투쟁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불편해했다고 한다. 특히 레벤스라움(게르만 생활권역)의 확대나 영국과의 동맹[5] 등 일개 당수로써 자유롭게 꺼낼 만했던 말들이 독일 총리로 취임한 뒤에는 구설수에 올라 그를 당혹스럽게 했던 점도 까닭이었다. 그는 집권한 뒤 "내가 총리를 맡을 줄 알았다면 그런 책은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도 했다.[6] 뒷날 두번째 책을 쓰려고 생각했고 프란츠 에어로부터 선인세도 400만 마르크나 받았으며, 1928년에 나의 투쟁 2부도 만들어 놨지만 출판하지 않았다. 먼젓번 책이 당 정책이랑 배치되는 내용으로 비웃음을 사고 히틀러도 이에 불만이었기 때문. 게다가 안 그래도 먼젓번 책에서 주장을 체계없이 늘어놓는 바람에 중간중간 논리 붕괴의 요소가 많았는데 2번째 책까지 나온다면 정적들이 공격할 보물단지 컬렉션으로 쓸까봐 주저한 것 역시 원인이다